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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두 얼굴의 불평등과 기회균등

동그라미 재단 2016.01.22

세계일보 2016-01-22 /

[A22면에 게재]

 

[기고] 두 얼굴의 불평등과 기회균등

 

지난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주목을 받은 사회과학자로는 단연 ‘21세기 자본론’의 저자 토마 피케티를 꼽을 수 있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가히 피케티 신드롬으로까지 불렸다. 그 이유는 점점 더 심해지는 우리의 불평등 문제에서 기인했다고 본다. 통계청이 고소득층의 소득분포를 보정해 발표한 신지니계수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불평등 정도는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6위에 해당된다. 최근 많이 회자되는 ‘흙수저, 금수저’ 논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간과하는 것은 이렇게 우리 사회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불평등이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문제라는 점이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앵거스 디턴 프린스턴대 교수는 불평등의 양면성을 지적한다. ‘위대한 탈출’이라는 저서에서 그는 성장의 부산물로 만들어진 불평등은 빈곤에서 ‘탈출’하지 못한 사람에게 빈곤의 터널을 빠져나오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어 동기부여가 된다는 점에서 발전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는 동시에 먼저 ‘탈출’에 성공해서 상위계층에 진입한 사람이 아직 빈곤의 터널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사람의 출구를 막아버리는 불공정한 행태가 만연한다면 불평등은 매우 억압적인 사회 기제로 작용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구교준 고려대 교수·행정학


디턴이 지적한 착한 불평등과 나쁜 불평등을 가르는 요인은 바로 기회균등이다.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보장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회구성원 간에 나타나는 어느 정도의 차이는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문제는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경쟁에서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공정하게 기회가 주어지느냐이다. 만약 누구에게나 균등한 기회가 주어지고 공정한 경쟁을 통해 차이가 발생한다면 먼저 성공의 사다리 정상에 오른 사람은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 주는 희망의 상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려스럽게도 우리 사회의 모습은 점점 더 ‘나쁜 불평등’의 얼굴로 변해가고 있다. 미국의 경제전문지 블룸버그 최근호에 따르면 전 세계 400대 부호 가운데 자수성가형 부자의 비중은 65%에 이른 반면, 여기에 포함된 우리나라 부자들은 모두 부모의 기업을 물려받은 상속형 부자인 것으로 조사됐다. 동그라미재단의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가 소위 SKY대학에 진학할 확률이 소득 하위 10%의 5배에 이른다. 흙수저, 금수저 논쟁이 괜한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나쁜 불평등이 드리우는 절망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말로만의 기회균등이 아닌 실질적인 기회균등을 이뤄야 한다. 표면적으로는 누구나 대학 교육을 받을 수 있지만 대입을 위해 한쪽에선 고액의 사교육과 대입컨설팅의 도움을 받는데 다른 한쪽에선 생활비 때문에 일하면서 공부해야 한다면 진정한 기회균등이라 할 수 없다. 한쪽은 내리막길을 다른 한쪽은 오르막길을 달려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질적인 기회균등을 이루려면 교육뿐만 아니라 경제, 건강 등 여러 분야에서 기울어진 운동장을 평평하게 만들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공교육과 공공의료의 강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을 위한 공정경쟁 제도의 확립은 좋은 예다. 경쟁의 사다리 정상에 있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이 ‘우리’가 됐을 때 비로소 우리 사회의 보통사람이 다시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구교준 고려대 교수·행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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