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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영리리더스쿨 관련기사] 8년간 길거리 배회하던 아이 못다 한 배움 이어가다

동그라미 재단 2016.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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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일보 2016-01-12 D8면

 

 

8년간 길거리 배회하던 아이 못다 한 배움 이어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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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더나은미래와 동그라미재단이 진행한 '비영리 리더스쿨 2기' 취재·보도자료 작성에서 최우수상을 차지한 송현주(금천교육복지센터) 팀장의 글을 토대로 취재, 작성되었습니다.  

 

교육 소외 아동·청소년 돕는 금천교육복지센터

집 안엔 박스와 잡동사니가 가득해 발 디딜 공간이 없었다. 돌돌 말린 달력 뭉치를 하나씩 펼쳐보니, 덧셈과 뺄셈이 틀린 숫자들로 빼곡했다. 지난 10여년간 정신분열증을 앓던 어머니가 수입과 지출을 계산한 흔적이었다. 2년 전 3월, 송현주 금천교육복지센터 개인성장지원팀장이 만난 정한(가명·22)씨의 집 안 풍경이다.

◇8년 동안 거리를 배회하던 아이, 대학에 합격하다

정한씨가 기억하는 학교의 모습은 2005년 가을이 마지막이었다. 어머니의 정신분열 증세가 심해지면서 그는 학교 대신 거리로 나섰다.

“팥죽, 나물 등 같은 음식을 몇 개월 동안 계속 먹어야 했어요. 매일 같은 옷만 입다보니 친구들이 놀려서 학교 생활이 힘들었어요. 엄마에게 학교 간다는 거짓말을 하고, 산으로, 골목으로 돌아다녔죠.”

그러기를 8년. 의미 없이 흐르던 무채색 정한씨의 삶에 변화가 생긴 것은 2013년 열아홉 살이 되어서였다. 우연히 아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 어머니가 초등학교를 찾아가 항의하면서 아무도 몰랐던 그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올랐다. 학교와 구청 복지정책과가 머리를 맞대고 인근 대안학교를 알아봤지만, ‘초등학교에서 책임지고 3년 안에 고등학교 과정까지 끝내라’는 어머니의 요구에 가로막혔다. 부모의 동의 없이 아무것도 진행할 수 없는 탓에 모두 발만 동동 구르고 있을 때, 당시 학교 교감 선생님이 금천교육복지센터에 SOS를 쳤다.

“한시가 급하고 심각한 상황이라서 저희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아이의 상태가 제일 중요했죠.”

송현주 팀장이 당시를 회상했다. 정한씨가 마음을 열 때까지 몇 번이고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센터를 통해 정한씨의 이야기가 전해지자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이어졌다. 지역 정신건강증진센터와 동주민센터에서는 어머니를 위해 입원과 치료를 도왔고, 쓰레기장 같았던 집도 지역 재단의 주거지원사업을 통해 말끔하게 정리됐다. 선뜻 정한씨의 공부와 매끼 식사를 챙겨주겠다는 학원도 나타났다.

거리 생활을 청산한 정한씨는 하루의 대부분을 학원에서 보내며 못다 한 배움을 이어갔다. 학원에서 배운 것을 토대로 대안학교에 입학해 검정고시를 준비했고, 가계부는 어떻게 작성하는지, 체크카드는 어떻게 만드는지 등 자립을 위한 준비도 시작했다. 주위의 도움 덕분에 정한씨는 3년 만에 중입, 고입, 고졸 검정고시를 모두 통과하고, 올해엔 한 대학의 호텔조리제빵과에 합격했다.

“새로운 환경인 만큼 두렵기도 하고 설레기도 해요. 그래도 꿈에 한 발자국 더 다가설 수 있게 돼서 좋은 게 더 크죠. 나중에 저만의 빵집을 운영할 거예요.”(웃음)

 

◇증가하는 위기 청소년, 지역사회가 품어야

만 9세부터 18세 사이 아동·청소년 중 위기 상황에 놓인 인구는 약 93만명(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2011). 이는 전체 아동·청소년의 13.7%에 해당하는 수치로, 해마다 청소년 2만여명의 가출 신고가 접수되고 7만여명이 학업을 중단한다.

지역교육복지센터는 학교와 지역을 연계해, 교육 소외 아동·청소년에게 필요한 도움을 맞춤형으로 연계하는 ‘허브’ 역할을 한다. 2012년 교과부 특별교부금으로 서울 강서·관악·구로·노원·성북 지역에서 시범 운영을 시작, 현재 금천· 중랑· 은평 등 16개 지역으로 확대 운영되고 있다.

송현주 팀장은 “학교나 지자체를 통하지 않고, 자진해서 오는 학생들도 조금씩 늘고 있다”며 “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제도권 도움을 받을 기준에 해당되진 않지만 도움이 필요한 학생이 많다”고 말했다. 금천교육복지센터의 경우 2013년 설립 당시 48건이던 학생 의뢰 건수가 3년이 지난 지금 140명으로 배 이상 뛰었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촘촘한 지역사회 협력망이 기반이 됐다. 금천교육복지센터는 지역아동센터 및 심리상담 연구소 등 100여곳과 협력 관계를 구축, 위기상황별 맞춤형 지원이 가능한 네트워크를 마련했다. 류경숙 금천교육복지센터장은 “관심과 애정만으로도 아이들이 훌륭하게 성장할 수 있다”며 “힘들어하는 학생이 있다면 고민하지 말고 각 지역의 교육복지센터로 연락 주시기를 바란다”고 전했다.